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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학습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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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활자

한구자

상세정보
한구자는 3차에 걸쳐서 주조된 동활자이다.
활자명
한구자
시대
조선 숙종 초년(1677 무렵)
종류
금속활자
상세정보
내용

한구자는 3차에 걸쳐서 주조된 동활자이다.
1. 한구자_춘소자집
2. 한구자_춘소자집_2

 

한구자는 3차에 걸쳐서 주조된 동활자이다.

초주 한구자는 무신자를 주조하였던 김좌명의 아들 김석주(1634∼1684)가 숙종 초년(1677 무렵)에 당대의 명필가였던 한구(1636∼?)의 독특하고 매력이 있는 소자 필서체를 바탕으로 사사로이 주조한 동활자이다.

 

재주 한구자는 정조 6(임인·1782)년에 평안도 관찰사였던 서호수(1736∼1799)가 왕명에 의하여 다시 주조한 동활자로 임인자라고도 한다.

 

삼주 한구자는 철종 9(1858)년 규장각검교제학 김병기, 규장각제학 윤정현과 김병국 등이 왕명에 의하여 다시 주조한 동활자이다. 초주 한구자의 자수는 알 수 없으나, 재주 한구자의 자수는 8만여자였고 삼주 한구자의 자수는 31,829자이었다. 활자의 크기는 대자 1.0X1.0㎝, 소자 0.9X0.5㎝이었다.

 

초주 한구자는 김석주가 죽은 뒤 별로 이용되지 않고 그의 집에 간직되어 오다가 숙종 21(1695)년 지경연, 박태상의 주청으로 정부가 사들여 서적의 간행에 사용하였다. 초기의 인본은 정교하나 숙종말기 이후 영조 무렵의 인본에서는 활자의 마멸이 생기고 보자가 섞여 인쇄가 깨끗하지 못하다.

 

이에 따라 정조조에 들어와서 다시 주조하여 이를 내각에 두고 사용하였다.

초주 한구자를 닮게 잘 만들었으나 그 중에는 재주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 있어 양자의 식별이 가능하다.

 

재주 한구자는 정조 18(1794)년에 창경궁의 옛 홍문관 자리에 새로이 설치한 주자소로 옮겨 사용하였는데 철종 8(1857)년에 주자소에 불이 나서 활자가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그 이듬해(1858)에 왕명으로 다시 개주되었는데, 개주된 활자는 자획에 박력이 없고 만든 솜씨가 거칠며 활자체가 정연하지 못하여 별로 이용되지 않았다.

 

현재 삼주 한구자의 실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간직되어 있으나, 그 인본은 별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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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기 내용은 2015년 전문가 감수를 받아 제작된 자료로 최신내용과 상이할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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